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깊었던, 효과적으로 적용된 듯한 요소가 두 가지 있다.
첫째로,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매끄럽게 흡수되었다. 전시의 덕목이다. 각각의 작품을 관람객이 연결시키지 않아도, 설계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작가가 의도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. 물론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효과도 있겠지만, 보다 내게 닿았던 것은 충격의 리듬이다. 좋은 작품은 모두 충격(혹은 울림)을 제공한다. 그리고 그 충격은 매체, 스케일, 소재 등에 따라 크게 변주한다.
- 거대한 스케일의 사운드 오브제들
- 작은 그림과 무대
- 다시 웅장하고 느릿한 영상(사진의 아우라를 띈다)
- 백색의 식물들,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3개국의 음악.
- 연약한 소재로 이루어진 생명력의 상징들, 그들이 이루는 거대한 벽.
울림을 내는 키워드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.
- 거대한 / 미소한
- 강렬한 / 차분한
- 여유로운 / 숨막히는
- 창백한 / 다채로운
- 균일한 / 다양한
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전시에서 컨트롤 해야 한다. 본 전시는
둘째로, 하나의 굵은 서사에서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(마치 가지처럼) 다양한 매체를 통해 흥미롭게 발현된다. <상상곡>에서는 그들이 보고싶었던 이들, 먹고싶은 음식 등을 다양한 언어로 속삭인다. <백년 여행기 - 프롤로그>에서는 백년초 이주 설화를 마임으로 재구성했고, <세대 초상>에서는 한데 얽힌 여러 민족의 피를 지닌 두 세대를 사진인듯, 영상인듯 기이한 아우라를 지닌 매체로 선보인다. <백년 여행기>에서는 3채널/1채널 비디오, 사운드 그리고 멕시코 식물의 형태만을 재현한 오브제들을 통해 세대•문화의 거리를 통합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. 마지막 <날의 벽>에서는 설탕뽑기 방식으로 다양한 마체테(농기구)들을 만들어 한국-멕시코의 새로운 통곡의 벽을 만들었다.
이처럼 작가는 정말 다양한 매체로 한국-멕시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. 하나의 서사를 여러 매체로, 여러 지점을 보여주니 궁금했던 부분을 바로 알려주는, 가려웠던 곳을 바로 긁어주는 기분이다.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. 다양한 매체를 다룰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. ‘테크닉’보다는 ‘디렉팅’.
다섯 작품 중 날 이끌었던 작품은 <세대 초상>과 <날의 벽>이었다.
<세대 초상>은 영상이다. 그런데 보통의 영상보다 20배 이상 느리게 재생된다. 현실의 속도가 아니다. 사진에 가까워보인다.(설명글에서는 ‘사진적 부동성’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라.) 우리의 피가 옅어진 인물들이 더욱 신비로워보인다.
23년 10월 3일